원래 계획은 8월에 논문을 끝내고 여행을 갈 생각이었다.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논문은 미처 끝내지 못했고 비행기표는 남아있었다. 사실 몇 번이나 고민했다. 아베 신조가 저 지랄을 8월말에 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렇게 하지 못했고 결국 비행기를 취소하지 못한 나는, 도쿄로 갔다.
이번 여행은 그동안 도쿄에 가면, 보고 싶었던 것의 한을 푸는 여행이었다. 사실은 혐한시위를 제일 보고 싶었다. 군대도 안가고 총 한번 안싸본 놈들이 패전한 국가의 군복을 입고 그 시절의 국기를 휘두르며 병정놀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마음껏 비웃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더구나 전세계에서 혐한시위를 하는 나라는 일본 뿐이지 않은가. 사실 혐한시위나 혐한서적은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가입하지 않는 여행자보험도 가입했다. 그런데 일본에 입국하니까 외교부에서 혐한시위 주의 문자가 왔다. 그 문자까지 받으니 주저하는 마음이 컸다. 거기다가 도쿄올림픽 한다고 도쿄 시내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를 금지해서 지금은 혐한시위가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한국에서 그렇게나 유명한 장소인 야스쿠니 신사를 가보기로 했다.
미디어에서 흔히 접한 야스쿠니 신사는 극우들이 욱일기를 휘두르며 메가폰으로 소리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비교적 이른 시각이었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야스쿠니 신사를 향해 걸어갔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첫번째 나오는 큰 도리이에서 배전까지 걸어가는 동안 대략 4~50명정도 마주쳤다.
대신 미디어에서 접한 극우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평온해서 오히려 놀랐을 정도였다. 여기를 찾은 방문객들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그들도 미디어에서 접한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들었던 생각은 역사를 잘 모르는 일본인이라면 일본 총리가 이곳을 방문하는 것에 왜 한국인과 중국인이 그렇게 반발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문제의 포인트는 이 곳에 전쟁에서 희생된 평범한 일본인의 영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식민지를 수탈하고 수많은 전쟁범죄의 직접적인 책임을 가진 도조 히데키 같은 A급 전범도 같이 이 곳에 합사를 했다. 또 당시 희생된 조선인까지 같이 합사를 했다. 심지어 합사된 조선인의 후손이 이 신사를 찾아 분사할 것을 요청했지만 그것 조차도 영이 하나로 되어버려서 분사할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거부하고 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야스쿠니 신사, 그 자체만으로는 조국을 지키다 돌아가신 영혼을 모신 곳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이 곳에서 들었던 느낌은 가해자로서의 일본은 사라진채, 피해자로서의 일본만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배전 앞에서는 흰색 옷을 입고 경찰모자를 쓴 경비원 아저씨가 참배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여기서 인상적인 장면을 봤다. 한국 교회에 가면 간혹 예배당에 앉아서 울면서 기도하는 아줌마를 볼때가 있다. 배전 앞에 넓은 공간도 아니었는데 어떤 아줌마가 서서 마치 교회에서 기도하는 아줌마처럼 울면서 한참을 기도하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배전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였는데 무려 5분간이나 그 자세로 머물러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이라면 잘 느끼지 못할 신토라는 종교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일본은 신토라는 덴노(천황)를 정점에 둔 종교를 믿는 국민이 대다수인 나라다. 덴노는 살아있는 신이다. 절대자이며 무오류의 존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렇게 종교로서 덴노를 섬기는 사람들이 덴노의 이름으로 자행되어졌던 수많은 범죄들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실수할리가 없는 무오류의 존재인 덴노의 군대가 히로뽕을 맞아가며 억지로 가미가제를 할 리가 없는 것 아닌가. 절대자인 덴노의 군대가 식민지 여성을 데려다가 성노예로 만들리가 없는 것 아닌가. 무오류의 덴노의 군대가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학살경쟁을 벌일리가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까지 생각하니 진정한 한일관계의 발전은 참으로 요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다. 마음이 무거워질 뿐이었다. 내가 예수를 전해야할 곳이 꼭 있다면 그 첫번째는 북한이요, 그 두번째는 일본이다.
나는 배전 앞에서 참배하지 않고 안을 구경하고 나왔다. 내가 참배하지 않자, 경비원이 어떻게 연락했는지 경내를 순찰하던 경찰이 내가 가는 길을 얕은 수준으로 쫓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걸 보면서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왜 그들은 한국인과 중국인이 이 곳을 그렇게나 싫어하는지 진정으로 이해해주지 않는 것일까.
경내에 소년병의 동상이 있었는데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시민들이 음료수와 꽃을 그 동상에 갖다놓았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틀 후. 야스쿠니는 욱일기와 일본제국 군복을 입은 우익들로 점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