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여사와 뮤지컬 영화 영웅을 봤다. 권여사가 펑펑 울었다며 속이 다 시원해진 느낌이라고 했다. 요즘은 신파 비스무리한 것만 나오면 기겁하며 비판하는 평론가들이 많다. 헬로우고XX 같이 영화내내 잔잔한 데시벨을 보여주던 영화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갑작스럽게 마치 꼭 울어야 한다는 듯이 엄청난 데시벨의 BGM을 트는 영화는 나도 사실 별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극의 전개에 따라 자연스럽게 들어간 신파를 단지 신파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기겁을 하며 비판하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웅은 뮤지컬 영화이고 그런 점에서 다소 과한 데시벨의 BGM이 흘러나오더라도 충분히 익스큐즈를 할 만한 요소가 있지 않나 싶다. 엘리트 평론가들은 촌스럽다며 기겁할지도 모르겠지만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것에 익숙해진 민중들의 삶에 펑펑 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신파 영화는 어쩌면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신파가 필요하다. 아직 우리에겐 신파가 필요하다.
2. 이 블로그에서 적힌 글 중에 '영화제'란 단어는 지금까지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칭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전주국제영화제를 지칭하는데 쓰인다. 작년 영화제에선 시계공방의 아나키스트인가 뭐시기인가를 봤는데 엄청 지루했다. 장인들이 손으로 하나하나 빚어서 만들던 시대에서 공장제 분업화로 전환되던 시기에 스위스 시계공장에 등장한 아나키스트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역시 혁명은 분노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웃음 속에서 나오는 것이구나 하는 감상 정도는 남겼지만 그다지 재미있게 본 기억은 없었다.
그래서 올해는 특별전을 봤다. 내가 본 영화는 불륜스캔들이 터진 이후 등장한 인터뷰 자리에서 불륜녀와 본처 사이에서 누가 더 좋은지를 솔직하게 대답하면 본처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대답을 할 수 없다는 희대의 인터뷰를 날린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출연한 위니winny란 영화였다.
유저간 파일공유 프로그램(P2P)을 개발한 개발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자꾸 수사당국에게 끌려가서 천진난만하게 수사관의 의도대로 시인을 해주고 있는 히가시데를 보니 캐스팅이 참 찰떡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결론을 알고 있으니까 판결이 우리가 아는 형태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하고 영화를 봤다. (칼이 살인도구로 쓰인다고 해서 그 칼을 만든 장인을 감옥에 잡아넣지는 않는다.) 그런데 최종판결이 나오는 장면에서 헉! 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이나 옛날에나 수사기관에는 시범케이스가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대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3. 1998년 봄, 부산 서면에 있는 은하스카이극장 옆에 있는 극장이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어떤 극장에서 용돈을 모아서 처음으로 친구들하고 같이 본 영화가 타이타닉이었다. 아마 기억하는 한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가 아닐까 싶은데, 얼마전에 아이맥스로 다시 봤다. 영화를 다보고 나니까 깊은 감동과 여운이 느껴져서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역시 마스터피스는 영원하다고 해야할지...
화면이 커서 그런지 주인공인 잭과 로즈의 이야기말고 타이타닉을 둘러싼 여러 군상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진 인물은 영화 초반에 잭(디카프리오)에게 도박으로 승선티켓을 잃고 타이타닉호를 못타게 되는 독일인인 스벤이란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이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운이 좋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타이타닉호를 탄 사람들은 죽었건 살아남았건 결국 모두 피해자였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설령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평생을 PTSD에 시달렸을 것이다. 때론 우리에게 불어닥친 불행이 또 다른 행운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후 구조하러 온 배가 카르페디아호였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타이타닉호는 최신식 설비로 시속 23노트를 낼 수 있었고 거대한 규모로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고 자랑했었지만 결국 뉴욕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정작 타이타닉호에 탄 사람들을 태우고 뉴욕에 도착한 배는 고작 14노트만 낼 수 있었던 구식 배였던 카르페디아호였으니 우리네 삶에서 속도나 규모,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흥미를 주는 요소였다.
어렸을 때는 로즈역의 케이트 윈슬렛이 그닥 이쁘다고 생각을 못했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 너무 예뻐서 내 눈이 달라진 것인가 아님 리마스터링을 하면서 보정을 하는 것인가 하는 착각을 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여자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 첫째일 것이고, 영화를 다시 리마스터하면서 보정도 좀 했겠지. 암튼 여배우가 너무 아름다워서 더 깊게 극에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3D안경을 써야한다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1912년으로 돌아가 내가 마치 타이타닉호를 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 맛에 영화를 보러가는 것이기도 한데, 그런 측면에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감상평처럼 5년에 한번씩 재개봉을 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영화다. 삶과 죽음, 행운과 불행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항상 인식하며 살아가야겠다.
4. 다음 소희는 극한의 사실주의 영화였다. 내가 자살의 바다를 건너다 뛰어내려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에도 버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스크린을 찢고 들어가서 버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행운과 불운은 연결되어 있으니 지금의 불운에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무엇이든지 끝이있으니까. 누군가는 죽을만큼 힘든 나에게 그래도 너는 사무직이니까 할만한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잘 모른다. 그래서 할 말이 없다. 다만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사투리 전문가로서(경상도에서 30년을 살았고 전라도에서 30년을 살아갈) 사투리 고증을 좀 해보자면 단순하게 어미에 ~잉을 붙인다고 해서 전주 사투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잉 으로 가기 위한 억양의 빌드업이 있어야 하는데 그 빌드업은 없고 그냥 ~잉 만 붙이니까 전체적으로 사투리 구사는 별로였다. 가장 네이티브에 가깝게 전주 사투리를 구사한 사람은 호수에서 처음 등장했던 형사 두 명 중에 왼쪽에 있는 형사였다. 광주 사투리보다는 조금 옅고 그라면서도 서울 사투리보다는 조금 억양이 있는, 그 어딘가의 경계선에 있는 전주의 사투리를 잘 묘사했다.
5. 얼마전에 한독수교 140주년을 맞아 브레멘필이 내한을 했었다. 세종시문화재단에서 주최하여 세종예술의전당에서 봤는데, 연주한 레퍼토리는 브람스였다. 확실히 유럽 본토에서 온 공연자들이라 그런지 내가 느끼기엔 큰 실수없이 깔끔하게 연주했던 것 같다. 원래 나같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잘하는 것은 잘 모르지만 틀린 것은 기가 막히게 찝어내기 때문이다.
중간에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 협주곡에서 앞에 나와서 연주한 빨간색 드레스 입은 한국인 바이올린도 기억에 남았다. 연주자들도 퇴근본능은 확실했는지 지휘자가 있을 때는 정말 깔끔하게 연주를 잘했는데 지휘자가 나가고 앵콜무대 할 때는 템포가 너무 빨라서 휙휙 지나간 느낌이었다.
브람스 4번 교향곡은 한 40분 되었던 것 같은데 베트벤 만큼은 아니지만 같은 멜로디의 변주가 계속 반복되어서 좀 지루한 느낌이었다. 마치 다른 놈들이 어차피 장르적 유사성 운운하면서 베낄테니 내가 자가복제하겠어 하는 느낌이었다. 분량을 줄이고 임팩트있게 30분 내외로 만들었으면 조금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조금 무식해 보이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무식한 것은 용감한 것이고 그것이 이 블로그의 모토이다.)
한 가지, 짜증나는 건 전라도민들도 한독수교 140주년 기념하고 있는데 이리 좋은 내한공연을 전라도만 쏙 빼놓고 한다는 것이다. 부산, 대구, 세종, 서울에서 하는 공연을 왜 광주나 전주에서는 하지 않는가. 한 두번이 아니다. 작년에도 서편제 뮤지컬이 음악 라이센스가 다 되어서 마지막 공연을 한다고 해서 부리나케 알아보니 또 전라도는 빼놓고 부산, 대구, 청주만 했었다. 이게 얼마나 어이가 없는 것이냐면 서편제 뮤지컬의 극중 배경은 전라도 지역임에도 그 좋은 뮤지컬의 마지막 공연을 전라도만 빼놓고 했다. 프로모터가 제안을 아예 안한 것이냐, 제안을 했는데도 전라도가 그거를 못받을 정도로 돈이 없는 것이냐.
이제 전라도민들도 멋진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