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논문이 그러하듯, 나의 학위논문도 쉽게 쓰여진 논문은 아니다. 구술사라는 것의 범위가 넓은 것도 있었지만 기록학 방면에서 구술사에 대한 연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중간에 몇번인가 주제를 바꿀까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구술사를 주제로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한 이유는 기록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록학이라 부르고 있지만 이쪽 계열을 기록관리학으로 부르기도 한다. 내가 기록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한 기록관리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계열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바운더리가 넓어지고 그와 함께 기존의 영역과 지속적으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이루어질때 해당계열의 전문성은 더 단단하고 깊어질 것이다. 말그대로 단순히 주어진 기록을 '관리'만 한다면 이른바 기록관리학의 전문성이란 그 밥에 그 나물일 것이다.
단순한 기록관리를 넘어서 'NEO 기록관리'를 지향하기 위해서 나는 아키비스트가 주어진 기록을 관리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기록의 생산에도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기존의 기록을 활용한 2차 컨텐츠의 제작일수도 있을 것이고(이른바 전시나 기록집 같은 것들) 필드에 나가서 해당 마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만들어진 혹은 던져주는 기록만 다루고 있을 것이 아니라 원래 기록이지 않았던 것까지도 기록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술사를 학위논문으로 써야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썼다. 수원시 팔달구 기록관에 있는 아키비스트가 직접 지동이나 행궁동의 마을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기록으로 남긴다면 기록학의 영역과 전문성은 더 깊고 풍부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