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이 소복히 왔다. 며칠 전부터 보고 싶었던 이집트 왕자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플TV에서 찾아보니 7,000원이면 소장해서 볼 수 있다. 결제를 해서 봤는데, 애플TV에서는 한국어더빙이 된 버전도 볼 수 있다. 자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 음성이 한국어로 나오다보니 영화의 감정선을 오롯이 따라가기 쉽다. '기적은 온다네, 믿는다면' 이라고 노래부르는 장면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러니 애니메이션 수입사에서는 왠만하면 목소리만으로는 감정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허접한 배우말고 전문성우를 써서 더빙판을 제작해줬으면 좋겠다.
이집트왕자를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여호와 하나님은 왜 이렇게 가나안에 집착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가나안에 사람이 안 살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출애굽기 시절에도 지금처럼 팔레스타인 민족이 살고 있었다. 그러면 가나안 땅이 비옥해서 생산력이 풍부한 지역이었을까? 딱히 그래보이지도 않는다. 당시에는 나일강 유역이나 티그리스강 유역이 훨씬 비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씩 맹렬한 바람이 일어나는 곳이서 히타히트인처럼 인류 최초의 철기무기를 제조할 수 있었을까? 딱히 그래보이지도 않는다. 도대체 왜 그렇게 이집트에 재앙을 일으키면서까지 히브리인을 불러내서 결국 정착한 곳이 가나안이었을까.
혼자서 이리저리 사색해보다가 한 가지 떠오른 생각은 가나안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 어디를 가기에도 교통이 편리한 곳이라는 것이다. 전라도와 서울을 연결하는 호남고속선은 굳이 오송을 경유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경상도까지 이어가는 교통허브를 만들기 위한 생각이라면 충청북도 오송을 경유하는 호남고속선을 대충 이해는 해볼 수도 있다. 가나안은 바다와 면해있어 지중해를 통해 대서양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을 가기에도 편리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래서 그렇게까지 가나안지역에 목숨을 걸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에 예수님이 2,000여년 전에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한반도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인류는 과연 여호와를 섬기는 기독교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까? 만약에 예수님이 유라시아 대륙 북쪽 끝 바이킹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면 지금의 인류는 발할라에서 만날 내세를 기원하며 목숨걸고 전투를 하는 전투종족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꺾을 수 없는 절대의지를 가진 어떤 자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최종목표를 향해 성스러운 빌드업을 해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뭐 다 방구석에서 혼자 해보는 상상이다.
이집트왕자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들고 내려오는 장면이 있다. 그 밑으로 엑소더스에 성공한 수많은 히브리인들이 모여서 환호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착한 사람은 고작 2명뿐이었다는 것을.
인생에서 고생 끝 행복 시작, 이런 것은 없는 것 같다. 지옥같은 이집트만 빠져나온다면, 공무원만 합격한다면, 서울대에만 들어간다면, 치과의사와의 결혼에 성공한다면, 대통령에 당선만 된다면, 모든 고생이 끝나고 과연 행복이 시작되는 것일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나. 인생에 있어서 어떤 조건이 충족된다고 해서 고생이 끝나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행복이 계속되는 그런 영화같은 해피엔딩은 없다.
출애굽은 했지만 최종목적지인 가나안에는 가보지 못한채 40여년을 광야에서 헤매는 히브리인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어떤 고생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 단계의 새로운 고생길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고생길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생길 속에서, 광야에서 40년을 헤맨 히브리인에게 그랬듯이, 하나님은 우리 한 명 한 명의 삶을 들불과 같이 지켜내고, 그리고 인도하고 있을 것이다.
기적은 온다네, 믿는다면.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