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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국은 기회균등의 땅,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열린 성공의 땅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국관이다.

이런 미국관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책이 바로 이 『아시안 아메리칸 - 백인도 흑인도 아닌 사람들의 역사』이다. 저자인 장태한씨는 그런 미국관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닌, 백인들만을 위한 나라이며 분명히 인종차별은 존재한다는 것으로, 이 인종차별을 위주로 한 아시아인의 미국이민사를 서술했다.

이 책은 분명 충격적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인종에 의한 차별이 약간은 존재하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기회균등을 보장해주고자 하는 사회가 바로 미국사회다’ 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의식은 1965년 새로 개정된 미국 이민법 이후였으며, 이렇게 완화된 인종차별정책도 9.11테러 이후 다시 강경한 차별정책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이다.

계층이나 계급간의 차별정책일 경우에는 그 계층이나 계급을 결국은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아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인종차별정책일 경우에는 애초에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마이클잭슨처럼 몇 번의 성형수술을 통해 완전히 백인이 되지 않는 한은 극복할 수 없다. (그마저도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힘들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 인종차별주의 적인 정책의 근원은 백인 자본가 층에게 그 원인이 있었다. 영국식민지 시절, 백인 자본가 층이 유럽이나 아프리카 대륙에서 계약직 노동자를 데리고 오면서 그들에 의한 노동쟁의가 발발하자, 노동자들 사이에서 백인 노동자와 유색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인종적 차별을 시행함으로서 계급간의 대결을 인종간의 대결 국면으로 바꾸어놓았던 것이다. 그것을 뿌리로 미국사회에서는 인종차별주의 정책이 성립하게 된다.

그러한 인종차별주의 이야기가 이 책에서 아주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계 미국인이나 이탈리아계 미국인들과는 달리 일본계 미국인들이 대거 포로수용소에 강제 수용된 일이며, 코카서스 인종은 백인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을 이용해서 인도인이 백인 여성과 결혼하려고 하자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법 조항을 바꿔가면서 인도인의 결혼을 거부한 일은 분명 미국사회가 인종차별적인 구조로 돌아간다는 것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아시안 아메리칸’ 이란 용어는 원래 ‘오리엔탈’이라고 지칭되어 지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격상시키기 위해 채택한 용어이다. 하지만 이 용어도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시안 아메리칸은 아시아의 미국인이라는 뜻이다. 미국인이긴 한데, 아시아에서 온 미국인 이런 뜻이 있다고 본다. 과연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아시아에서 온 미국인 이라고 불리고 싶을까? 아니다 그들은 그냥 미국인, 아메리칸으로 불리기를 원할 것이다. 지금 현재는 일단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지만, 언젠가는 그냥 아메리칸, 진짜 미국인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들은 현재 진짜 미국인이 아니다.

본래 미국은 백인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백인들만으로 경제개발을 하기에는 노동력 수급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을 가진 흑인과 아시아인, 그리고 라틴계 민족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필요에 의해서 유색인종들을 미국에 받아들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색인종이 미국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피부색이 달랐으니까.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은 절대 미국인이 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미국에 어떤 지대한 공헌을 했는지 같은 거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피부색.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잣대였고, 이런 이중성이 바로 미국의 모습이다.

미국은 현재 초강대국이 되었다. 이 지구상의 모든 곳에는 바로 미국의 영향력이 끼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하루 종일 미국과 관련되어 생활될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모토로라 휴대폰 알람으로 잠에서 일어나고, TV에서 나스닥지수 하락 소식을 전해 듣고, 맥도날드에서 브런치를 먹고, HP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하고, 부시대통령이 나오는 북핵관련 뉴스를 보면서 하루를 마감할 수도 있는 법이다. (실제로 나는 지금 컴팩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다행히 블로그 프로그램은 티스토리를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윈도우 비스타도 바로 미국산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미국을 무조건 반대할 순 없다. 단순히 이념과 도덕만으로 국제관계를 풀어나갈 수는 없는 거다. (과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예에서 보듯이 국제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잣대는 도덕이나 의리가 아닌 바로 실리이다.) 때문에 우리는 미국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도 태평양 전략상 대한민국은 아주 훌륭한 우방이다. 그런 관계가 계속 유지되어야하고, 앞으로도 쭉 그러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친미로 돌아서서도 곤란하다. 미국은 이중적인 나라다. 미국이 지금처럼 초강대국이 된 데에는, 단순한 백인의 힘이 아니라 흑인, 아시아인, 라틴계 등 미국 내에서 현재 차별받고 있는 인종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탄압하고 차별했던 것이 바로 미국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단지 필요가 있기에 대접하는 것일뿐, 필요가 없어진다면 토사구팽될 게 뻔하다.

미국의 모습은 상당히 이중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밝혀낼 거리가 많고, 알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앞으로 미국은 상당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 바로 그런 나라가 아닌가 싶다.


이미지 출처 : 인터넷 서점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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